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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노무현의 상속자’ 유시민, 재승박덕(才勝薄德) 극복의 열쇠는?


대한민국에서 누가 죽어 7일 동안에 500만명을 동원할 수 있을까? 사후(死後)에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어린이와 노인을 빼면 성인 인구의 절반이 제 발로 빈소를 찾아오게 할 수 있을까? 무슨 마력이 이렇게 무서운 카리스마를 갖게 했을까?

사후에 평전(評傳)이 아닌 자서전이 출간됐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평전이 아니라 ‘유시민’의 저작으로 세상에 나왔다. 저자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숙명처럼 노무현을 만나 그의 죽음에는 상주(喪主)가 되고 제1의 정치적 유산 상속자가 된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 원장.

2010년 한해가 저문다.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 시간이다. 노무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의 이념과 가치는 유시민을 상징으로 해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희미한 불씨가 재 덮인 화로 속에서 내연(內燃)하고 있다. 불쏘시개가 더해지면 언제 활활 타오를지, 그 잠재력이 언제 폭발할지 휴화산(休火山)으로 끊임없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나고 보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던 모든 사건 사고도 오로지 시간은 지나간다는 명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라는 푸시킨의 말대로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서러워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 자신을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니

정치의 계절이 아닌 적이 없지만 대권을 향한 모든 정치적 행위에는 시간의 오차와 끝이란 없다. 조그마한 불씨가 있어도 불씨를 살리며 가고 싶은 것이다. 끝도 없는 시작과 계획 사이에 저마다의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다지는 시간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미로’처럼 정치인에게는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어서 정치세계는 항상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것이다.

18대 국회의원 낙선, 도지사 도전 실패 등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이어지는 실의의 세월 속에서 금년 한해는 유시민에게 유독 길게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음은 미래에 산다는데 포기할 수 없는 대권주자로서 지지세가 아이돌 가수의 팬덤처럼 엄존(儼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승리자다.

각 대학에서 초청이 쇄도하고, 대학생 팬클럽이 생겨 방청객을 제한하는 일까지 벌어지니 기성세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지지율이 두 자리 숫자이다 보니 여타 후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12월 첫째 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 차기 여야 대권주자 지지율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전주와 동일한 30.8%를 기록했다. 2위는 유시민 원장으로 1.9% 감소한 12.2%를 기록했고, 한명숙 전 총리가 8.9%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손학규 대표가 8.3%로 4위, 김문수 지사가 7.9%로 뒤를 이었다.

최근 서울시 무상급식 문제로 시의회 의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오세훈 시장은 1.2% 하락하면서 6.9%로 6위를 기록했고, 북한 도발에 강경대응 입장을 밝힌 이회창 대표는 1.8% 상승한 5.3%로 7위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정몽준 대표가 5.2%로 뒤를 이었다.

연거푸 낙선한 유시민이 대선 2위로 랭크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미 2012년 대권전쟁은 시작되었다. 피날레는 물론 2012년 12월이 되겠지만 박근혜 전대표의 한국적 복지정책 발표와 정세균 최고위원의 대선을 염두에 둔 연구소 설립 등 나름대로 잠룡들이 전략 전술을 가지고 대권행보에 시동을 걸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의 정치지형을 염두에 둔 유시민원장이 가세하고 있다. 그는 “2012년 12월 이후 정치는 없다는 각오로 정권교체와 야권연대에 모든 걸 바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게다가 “2012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정리해고하고 2012년 대선에서는 MB정권을 해고해야 한다”며 “이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해내야 한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북관계 등으로 지리멸렬하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한마디 한마디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역사선생 아들 유시민 - 유년시절부터 독서광

그의 정치이력은 오히려 대단치 않다. 국회의원 몇 선이냐가 정치역량을 판가름 한다는 우리 정치사에서 그는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 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을 뿐이다. 16대 총선 재보선에서 고양 덕양구 갑에서 당선된 후, 17대에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18대에서는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서 출마, 주호영 의원에게 밀려 2위로 낙선하였고, 금년 6·2지방선거에선 야권 통합후보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으나 4%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오로지 정치인으로만 여길 수 있을까? 그는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논객이자 정치인으로 이해된다. 논객으로서 그는 모든 현상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토론하고 자신의 주의, 주장을 펼 수 있으며 탁월한 분석력과 언어 구사력을 보유한 지식소매상이다. 정치인으로서 무대와 현장을 빚어내는 재주를 지닌 것. 말하자면 북 치고 장구 치고, 기획에서부터 연출, 배우, 흥행몰이까지 하는 완벽한 지식인이다.

경북 경주 출생이라고는 하나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으며 군사정권하에서 두 차례의 감옥살이와 제적, 복학을 거쳐 199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소 논란이 있지만 일제 때 만주에서 훈도를 지내고 경주에서 역사선생을 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독서를 생활화해 온 그의 대중적 지명도는 80년대 말 출판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일약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생기기 시작하였고 1985년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 제출한 항소 이유서로 유명해졌다.

특히 항소이유서에서 인용한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처럼 그는 슬픔과 노여움이 많은 ‘소셜 리버럴리스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한 ‘97대선 게임의 법칙’ 등을 저술하며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한 그는 1999년 12월 6일자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 라는 동아일보 칼럼에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집권당 국민회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쁨을 맛본 지 불과 2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을 경계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예스맨만을 중용한다는 비판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하면서 “나는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접었다.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었다. 미움보다 더 아픈 것이 냉소와 무관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고 독하게 비판했다. 당시 DJ 열혈 지지자였던 강준만 교수와 지상 공개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김대중 측 인사들은 “영남 우월주의와 패권주의 혈맥이 흐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뒤늦게 2010년 5월 24일 이희호 여사에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사과했다. 그는 정부에서 일하고 나서야 김대중 대통령이 얼마나 힘들게 거기까지 이뤘는지 알 것 같았다며 “생존해 계실 때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었다.”면서 복지국가 초석을 깔았고 남북 관계도 분단 50년 만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MBC간판 토론 프로그램 100분토론 진행을 맡으면서 그의 논리와 지적인 모습은 대중정치인으로 나서게 하는 발판이 되었음을 부인키 어렵다. 새로운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2002년 8월 절필 선언을 하고 정치에 뛰어 든다. 이전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등의 저술가로, 칼럼니스트로, 토론진행자로 알려진 그는 ‘노무현 후보’가 위기에 처하자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이라는 격문을 날리며 가장 선동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노무현은 운명이다 - “어떡하냐. 배역이 그런데, 팔자다”

2002년 10월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자신도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3년 의원선서를 위해 첫 출근한 국회의사당에서는 캐주얼 콤비에 라운드 티를 입고 등원해 상식을 깨는 파격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자유주의적 소신을 바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강제적 주입이기에 굳이 강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다.

또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독설로 한나라당의 공분(公憤)을 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같은 당의 의원일지라도 직설적으로 비판해 구설(口舌)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에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입각을 강행하자 여당인 민주당이 집단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이 출범할 때 개혁당은 열린우리당에 통합되었는데 유시민과 노무현 대통령 관계는 “사랑하고 보호하는 관계”이자 “영혼의 샴쌍둥이”라고까지 일컬어졌다. ‘정치적 경호실장’이라고 할 만큼 유시민의 정치역정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존재는 추모와 인간적인 의리 관계를 넘어서 ‘공동운명체’에 가깝다. 온갖 욕을 들어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노무현에게 사랑과 보호를 바쳤다.

‘인생이 팔자를 못 벗어난다’는 속언대로 그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는 이미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운명’이 되었고 “어떡하냐. 배역이 그런데, 팔자다”라는 그의 말대로 불가분의 끈으로 묶인 제1의 정치적 유산 상속자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제 노무현은 유시민의 운명이다. 아니 노무현이 유시민이다.

그는 논객으로서의 날카로운 객관적 비판의 힘으로 노무현 정책을 지지했고 일단 사령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격 앞으로’ 하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채 저돌적(猪突的)으로 돌진하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던 것이다. 구중심처(九重深處)에 있던 노무현의 심중(心中)을 헤아릴 수 없을 때 많은 이들이 노무현의 생각을 유시민을 통해서 읽었다. 유시민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참여정부의 실질적 조타수 역을 훌륭히(?) 수행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유시민은 노무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둘은 닮았다. 솔직한 직설적 화법, 상황을 치고 나가는 승부사적 기질, 현상을 정반대 시각에서 보는 것, 대립 전선 형성을 통한 국민의 이목 집중 등 비슷한 정치 스타일을 넘어서, 정치개혁 과제 등 철학까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은 대통합 민주신당과의 합당을 의결했다. 유시민은 “우리당의 꿈을 접어 가슴 속에 담고 가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백지(白紙)와 같은 거대 민주신당에서 꿈을 함께 그려 가겠다고 호언했으나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으며 유연한 진보신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 서겠다고 큰소리쳤으나 낙선하였다. 한나라당 텃밭이라고 부르는 보수지역인 대구에서 주호영 의원과 대결자체가 이슈를 제기했으나 그는 그렇게 자신을 연단의 험난한 과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노 전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앞서 졸렬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면서 그해 11월 10일 국민참여당에 입당하고 2010년 5월엔 야당인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의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하였으나 김문수 후보에게 져서 또 고배를 마셨다.

짧은 정치 경력에 이렇게 숨 가쁜 정치역정을 굵게 가고 있는 후보가 있을까? 어딜 가나 마이크만 잡으면 술술 말이 나오는 정치인, 유시민. 젊은 지지자들에게 충성도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정치적인 인물이되 정치적이지 않다. 여기서 비정치적이란 말은 폼 잡지 않는단 말이다. 그것이 권위에 대한 부정이든 비판이든 그는 새롭다. 각종 수사와 논리로 무장된 그의 말과 글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패러다임의 분석과 확고부동한 자기 논리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대를 이어 자기 목소리로 국정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리고 당대의 정치인 중 유일하게 이데올로기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특히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식의 구태(舊態)를 벗어나 있다. 이 새로움은 상대가 왠지 불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낯설음이 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로 낯을 가리게 만든다. 그의 열혈 지지자들의 극성도 상대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개인적으로 학생운동 선후배로 깊은 관련이 있는 김문수 후보와의 토론에서 그는 집요한 공격적 토론으로 보수층을 결집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발휘했던 측면이 있다. 그는 밖으로는 논객으로, 안으로는 정치인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그 자신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책 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예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이러한 정치인의 긍정적 목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그런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도 부르고,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마시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니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그는 자신의 모습을 부지런히 단련하며 왔다. 머리에서 하는 일과 가슴으로 하는 일을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실천해 나갔으며 이제 야권 연합을 이루어 그의 표현대로 한나라당을 국민의 손으로 해고시키겠다고 장담하고 나섰다. 해고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정치가 신랄하면 백성들은 혼란해진다

39세에 사약을 받아야했던 조선조 개혁정치 아이콘인 조광조처럼 그도 자신이 지닌 신념만으로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노무현이 현실정치에서 실패한 것은 그의 왜곡된 신념을 가능케 하는 고무줄 상식과 사리가 문제였다. 세상에는 사리에 맞아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고, 또 도리에는 어긋나도 사리에 맞는 이중성을 지닌 일들이 왕왕 있다.

노대통령이 퇴임 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비극의 근원이 어디에 기저하는지 복기(復棋)해 볼 일이다. 노대통령이 직무수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특권집단의 부당한 공격에 나는 항거하고 있다.”라고 외친 발언은 일리 있었다. 검찰, 재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들을 겨냥한 발언이었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부터 챙겨야 했었다.

여당과 자신을 지지하던 특권층이 아닌 서민들이 노대통령에 등을 돌린 이유는 그럼 무엇이었단 말인가?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급급한 독선적인 대통령의 마인드에 질렸기 때문이 아닌지 이젠 돌아봐야 할 시기다. 노무현의 유산 상속자로서 그의 공과(功過)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비판받은 부채도 자산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진성당원화, 공직 후보자의 국민참여 경선, 지구당 폐지’ 등 정치실험이었던 열린우리당 시절 그는 ‘자신이 옳다’는 독선이 너무 강해 당내 갈등의 주역으로 마찰을 빚곤 했다. 대선 가이드북으로 최근 출판된 ‘진보집권플랜’(조국, 오연호 대담집)은 “섹시한 진보로 더듬을 수 있는 프레임을 짜라”고 충고하면서 “유시민은 정치라는 게임의 법칙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마키아밸리적 재능이 있지만 재승박덕(才勝薄德) 이미지는 벗어나야 한다”고 아픈 지적을 했다.

그래서 유시민은 ‘노사모’처럼 확고한 지지 마니아층이 두텁긴 해도 확장성엔 한계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일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은 “여권에선 ‘유시민이 나오면 우리가 이긴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면서 국민참여당에서 정치 지형을 새롭게 그리고 권력을 바꾸는 일을 함께 해나갈 것이란 포부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지, 그래서 야권 통합의 거름이 될 생각이 없는지 한번 묻고 싶다. 그걸 할 수 있다면, 굴레를 벗어나 그가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고 지적한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뛰어난 정치인은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뛰어난 정치인은 반대를 즐기고, 위대한 정치인은 반대를 만들어내는 정치인”이라면서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분노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반대를 넘어서 경멸의 단계로 들어선 유시민은 대중적 리더십을 얻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그의 정치인과 논객으로서의 갈등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국민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 요구하는 정치덕목은 어떤 색깔이 아니다. 그 색깔을 뛰어넘는 머리와 가슴을 다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제왕학의 교과서인 노자 도덕경을 다시 가슴으로 읽으며 재승박덕의 허물을 벗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가 밋밋하면 백성들은 순박해 지고, 정치가 신랄하면 백성들은 혼란해 진다.”(도덕경 58장)

“진실로 훌륭한 인물은 사납지 않으며, 진실로 잘 싸우는 사람은 화내지 않으며, 진실로 강한 사람은 상대와 싸우지 않으며, 진실로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남 밑에 머문다.”(도덕경 68장)

노무현 대통령의 상가에서 절규하는 그의 눈물처럼 어쩌면 국민들은 인간 유시민을 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죽어있는 척 하지만 건드리면 꿈틀거리기도 하고 폭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완강한 비토세력이 천형(天刑)처럼 엄존하는 그가 “신고(辛苦)의 세월을 보내면서 많이 둥글어졌다”는 국참당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이병완 광주시의원의 애정 어린 평가는 식구끼리의 칭찬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2004년 열린우리당 동료의원으로 운동권 후배이던 김영춘이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이야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공개적으로 수모를 줬지만 이번 경기지사 선거 때는 “명석한 유시민이 이제 겸양과 온유함까지 체득했다”고 공개지지 선언을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니길 바란다.

사막도 많고 정글도 많은 아프리카에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이 왜 전해지는지 유시민이 명념(銘念)할 일이다. 아수라장인 정치판에서 정글의 법칙을 굳이 말하고 싶진 않다. 그가 더 체험하고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통합에서 그의 대권 무대에 텐트가 쳐질 것인지, 아니면 가치 중심으로 재편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

[박종렬 ㅣ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