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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대구 2.28. 기념공원 분향소

퇴근하고 늘 그렇듯이 저녁 먹고 넷에 접속해서 이곳 저곳 보던 중에 대구에 설치한 민간 분향소가 몇 군데 눈에 보인다.
뉴스에서 두류공원에 정부 분향소를 설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므로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저녁 9시면 문을 닫고 국민 정서상 어쩔 수 없이 대충 설치한 분향소라는 생각 때문에 마침 "2. 28. 기념 공원"이 시내에 있다니 그곳에 반드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 명덕 로터리(지금의 명덕 네거리)에 2. 28. 학생 의거 기념탑이 있었지만 지하철 공사하면서 탑은 두류공원으로 옮겼다는 것은 알지만 대체 2. 28. 기념 공원이 어딨는지는 시내에 출입이 거의 없는 내가 알 턱이 없다.
다음 지도에도 "2. 28. 기념공원"으로는 검색이 안되고 (나중에 보니 '2. 28. 청소년 공원'으로 나온다 -_-;) 어찌 어찌 블로그 검색으로 대백 뒤쪽에 있다는 것은 파악, 집사람을 닥달해서 옷을 챙겨입고 9시가 넘어서 지하철을 타러 나섰다.

고담시티(Gotham City) 대구에서 '노무현'이란 이름이 갖는 무게는 보잘 것이 없었다.
그 전 김대중 당선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시절에도 가장 적은 표를 가져간 곳이 대구였고 그후 이 곳에선 '한나라당'이 아니고서는 발을 붙일 수 없는 그야말로 '수구, 보수의 본향'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자연히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절대 정치 이야기는 금물, 별 논리없어도 '전라도 놈들, 그리고 그 패거리들' 이 두 마디면 모든 사람들이 '상것'이 되어 버리는 곳이니...
무엇이 이 지역 사람들의 가진 무모한 정치적 우월감과 편협함, 그리고 대책없는 선민의식을 만들어 놓았는지..
아마 박정희 정권 이래 이어온 전두환, 노태우를 배출한 고장으로서 동향인에 대한 보호 정신이 너무 과하여 타 지역 출신인, 특히 호남인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키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구야, 정신 차려라 제발..)

어제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보니 지금 한창 동성로 축제 기간이라 일부 시민 단체에서 조그맣게 마련한 분향소 옆에는 춤과 노래가 날라다니고 분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온 나라가 추모의 분위기에 자숙하고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 국회마저 중단된 상황에서 아랑곳없는 곳은 역시 이곳 대구 뿐이라..
하지만 오늘 막상 대백 앞을 지나면서 보니 설치된 무대는 철거하고 없고 상인들 역시 철수했다.
아무래도 일부지만 시민들의 항의와 낯부끄러운 일이 되다보니 시에서 축제를 중단한 듯 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니 타 지역의 축제는 대부분 중단되었는데 대구에서는 축제 규모를 일부 축소했을 뿐 예정대로 진행했고 그 일정이 25일 끝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중단은 아님)
대백을 지나 조금 지나 네거리 왼쪽에 공원이 보인다.
아, 여긴 과거 시립도서관이 있던 자리인데... 아마 시립 도서관이 자리를 옮기면서 그 위치에 공원을 조성한 것 같았다.
새삼 옛날 중학 시절 학교 마치고 이 곳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니 집사람은 벌써 공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알고 보니 옛 국세청 바로 맞은 자리. 지금은 밀리오레를 거쳐 대구 시티 센터로 이름이 바뀐 옛 국세청 맞은 편이 바로 2. 28. 기념공원.

공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중앙엔 분향소 확장 공사를 한창 하고 있었다.
공식 분향소는 도로 쪽 버스 정류장을 낀 인도 쪽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그리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도로에 한 30미터 정도 죽 줄을 지어 분향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보니 왈칵, 아 이곳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었다.

 흰색 천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들이 적혀있다.

한 켠엔 촛불이 켜져있고..

새로이 설치하고 있는 분향소. 한창 공사 중이다.

촛불을 들고 추모사를 쓰는 시민들.

도롯가에 설치된 분향소.

한 아이가 꽃을 들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순서를 기다린다.

아직 어린 학생도 그 뒤에 서 있고.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

국화를 나누어 주는 봉사자.


누군가의 손을 거쳐 헌화를 기다리는 꽃들.

추모글을 남기는 여학생.

순결한 국화

가족이 분향하러 온 듯 틈바구니에 작은 꼬마도 정성스레 절을 하고 있다.

저 어린 소녀는 이 날의 슬픔을 알까...

어떤 이는 담배에 불을 붙여 올리고

고인이 평소 즐겼다는 Cloud 9이
유시민씨가 처음 올린 이후 이 곳 분향대에도 가득 연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분향소 바로 뒤엔 유시민씨가 남긴 "당신은 영원히 나의 대통령" 시가 벌써 인쇄되어 걸렸다.

화단을 따라서 촛불이 죽 늘어서 있다.

어떤 촛불은 이미 생명이 다해 사그라지지만 새로운 촛불이 그 옆에 놓임으로 생명은 생명을 이어 계속될 것이다.

여기 저기 추모사를 건 헝겊이 내걸리고 그 사이를 배회하는 시민들.

분향소 곳곳에 고인의 유언과 추모사가 현수막으로 남겨져 있다.

헌화를 마치고 공원을 빠져올 무렵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같이 헌화길에 동행한 평생지기.

주변에 들어선 롯데 시네마, 대구 시티 센터